<미술과일 자료집 서문>

 

‘미술과일’은 9명의 젊은 작가와 기획자들이 아트 스페이스 풀에 모여 지난 6개월간 꾸려온 학습공동체의 이름이다. 이 모임의 구성원들은 ‘미술하는 나’가 처한 미술의 지형과 사회의 환경을 돌아보고,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일을 상상해왔다. 대안공간과 공공미술의 흐름, 예술과 노동, 여성주의, ‘잉여’와 웹을 둘러싼 문화이론, 웹의 탄생과 발전 과정, 홈페이지 제작 기술, 기술문화 비평 등 여러 주제를 함께 학습하는 한편, 공동의 영역-미술(계)에서 ‘작동 가능한’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한 모의를 지속해 왔다. 미술과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출발한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써, ‘미술과일’은 광의의‘기술’을 매개로 작동하는 새로운 홈페이지를 만들기로 했다.

 

이 자료집은 지난한 스터디의 과정에서 테이블 위에 올랐던 다양한 주제들을 담고 있다. 구성원 각자가 작성한 10편의 글과, 홈페이지 구상 과정을 기록한 시안으로 구성했다.

조은비는 ‘소진된 대안 그리고 미술과일’에서 대안공간의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부딪힌 딜레마와 자기고민을 털어놓는다. 올 한 해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촉발된 이슈 및 ‘대안적 문화운동’의 무력화된 상황을 진단하고, 새로운 존재방식으로서의 ‘터’를 열 것을 제안한다. 김동규의 ‘전문가와 비전문가, 그리고(비)전문가’는 예술과 경제를 둘러싼 논의의 한켠에서, 작가의 직업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제안을 담고 있다. 이지원은 아트 스페이스 풀의 행정매니저로써 학습공동체 사업을 진행하면서 느낀 광의의 ‘업무 환경’에서 도출된 현실적 이슈를 ‘미술과 일과 일’에 담았다. 김수영의 ‘웹의 성별화된 영토, 빠순리그의 분투’는 웹의 문화 현상을 기반으로 부상한 ‘잉여 담론’에서 출발하여, 특정한 웹상의 영토가 현실과 관계 맺는 과정을 특정 팬덤의 상황을 예시로 들어 보여 준다.

꼴라쥬-쓰기 작업을 선보여 온 진나래는 신자유주의 내 작가로서의 삶을 ‘총제적 난국’으로 보고 그 사이로 종합 곡예를 시도한다. ‘총체적 난국, 그리고 지그재그’는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고민들의 연속이다. 최다영의 ‘두잇유어셀프x오픈소스’는 우리가 처한 물적 조건 및 실천의 지평을 웹상의 논의로 확장시키기 위한 토대로써, 오픈 소스 개념을 소개한다. 오픈소스를 중심으로 한 공유 문화와 웹의 이상을 둘러싼 주요 개념을 살핀다. 권동현은 드미트리 클라이너의 ‘텔레코뮤니스트 선언’의 논의를 소개하는데, ‘공동의 생산과 공유’라는 과거 웹의 가치가 빠르게 자본에 점유되어 가는 현실에 대항, 웹상의 좌파적 행동 지침을 담는다. 또한 창조적 노동을 둘러싼 저작권의 문제를 둘러싼 다층적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웹상에서 가능한 ‘예술가의 공유지 창출’을 위한 제안을 피력한다. 신익균의 ‘제작-기술’에 대한 에세이는, 제작의 과정에서 몸소 얻은 기술 노하우에 대한 서술로, 작가의 일을 구성하는 기술의 일면을 보여준다. 앞으로 웹사이트를 통해 공유할 것으로 기대되는 광의의 기술 노하우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이기도 하다.

끝으로, 미술과일이 제안하고자 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웹사이트의 청사진을 담았다. 매체 환경을 마주하는 예술가들에게 있어 ‘기술’이 갖는 의미와, 기술의 ‘공유’로써 열 수 있는 성취의 체험을 향한 기대를 담은 김동규의 글에 이어, 수많은 회의를 통해 홈페이지의 상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이유로 수락되거나 기각된 시안들을 차례로 제시할 것이다.

이 자료집은 나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혹은 미술의 무기력에서 활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동력’을 찾고자 다각도로 접근한 학습공동체의 여정을 정리하고 있다. 이 글들이 앞으로 제작될 홈페이지와 다음 단계의 더 구체화된 논의로 가는 초석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