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은 장기에 걸쳐 가변적인 형태와 매체로 확장되는 동시대 미술의 작업생산방식을 고려하여 프로덕션 과정에서 벌어지는 연구, 토론, 해외 레지던시 체류, 스크리닝, pdf 프리젠테이션, 글, 서적 발간, 온라인 대화 등 작업 소개 방식과 형태를 다양화 하고자 합니다.

풀은 자체적으로 주관하고 주최하는 인하우스 전시사업 외에 국내외 미술기관, 사회단체, 작가, 독립기획자, 학교 등과의 협업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공동기획 프로젝트, 해외 레지던시 진출, 왭을 통한 컨텐츠 공유, 연계사업 등 외부 진출, 연계사업을 다양하게 확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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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스페이스
 
2018 풀 프로덕션 《오늘, 아무도 없었다

○ 전시명: 오늘, 아무도 없었다 
○ 작가: 권혜원, 기슬기ㆍ박은하, 이이내, 임소담, 정주원
○ 기획: 김미정
○ 그래픽디자인: 강경탁(a-g-k.kr)
○ 공간디자인: 신익균
○ 기간: 2018년 3월 23일(금) ~ 4월 29일(일)
○ 오프닝: 2018년 3월 23일(금) 오후6시
○ 장소: 아트 스페이스 풀
○ 관람시간: 11:00 ~ 18:00(매주 월요일 휴관)
 
*본 전시의 오프닝 행사는 몰타맥주Cisk와 함께합니다.
 
 
오늘, 아무도 없었다니, 꽤 단호하게 말했지만 그건 넌센스다. 항상 여기에는 무언가가 있었고, 그 무언가는 한 번도 단순했던 적이 없다. 이미지, 꽤 거창한 언어와 논리, 이론들. ‘그것’은 다 함께 주제와 맥락을 만들었고, 이미지에 대한 이해와 설득을 보충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따라붙은 것들이 오히려 기획의 부실함을 드러내기도 하고 작품의 경험을 방해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늘 넘쳐나는 곳이 여기다.
 
…무언가가 있음을 이토록 단호하게 주장하긴 했지만 순간 헛헛해진다. ‘그것’은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사진이나 도록, 리플렛에 찍히고 기록되어 남겨지기는 한다. 그러나 한때 이곳을 채웠던 것들은 제 주인에게 돌아갈 것이고, 세워졌던 가벽, 가구들은 무너뜨려질 것이며, 공간은 기록으로만 남을 것이다. 그렇게 늘 비고 차는 것이 반복되었던 곳이 여기다.
 
그런데 문득, 여기서 사라진(혹은 앞으로 등장할) ‘그것’의 역할과 임무는 무엇이었을지(무엇일지) 궁금해진다. ‘그것’들은 한정된 시/공간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마치 ‘그것’의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로 곡해될 것 같은데, 미리 말하자면 그건 아니다. 무언가가 사라진다는 게 우리에게 그렇게 새로운 일이 아님은 잘 알고 있다. 그저 ‘그것’이 끝난 후 각종 폐자재가 넝마처럼 늘어진 장면을 볼 때 마다 역할과 임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뿐이다. 역할에 대한 질문은 작품을 포함한 모든 구성요소와 ‘그것’을 지탱하고 있던 언어까지 포함한다. 특히 언어는 ‘그것’이 작동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언어 때문에 작품은 설득력을 가질 때도 있고, 기이할 만큼 무의미해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빈 공간을 마주하는 일은 여전히 낯설다. 카오스니, 폐허니 하는 낭만적 감상 때문은 아니다. 다만 주어진 공간 안에서 사라지고 채워지는 과정의 반복,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빈 공간이 결국 ‘그것’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후 잘 정돈된 언어들과 이미지, 많은 이들의 노동과 고민의 결과물이 곧 다시 현전할 것이다.
관객은 각종 인식/경험 체계를 열어놓고 거기에 놓인 텍스트와 정보들과 함께 공간을 배회할 것이다. 물음표를 안고 들어선 그곳에서 맞닥뜨린 인상들, 그곳에 놓인 작품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 읽히지 않을 때의 막막함, 순간적 공감과 이해가 맞물렸을 때의 희열. 그렇게 관객은 하나의 공간에서 주어진 상황을 읽어가며 이해하고 인식해 나간다. 이 텍스트 또한 정보제공의 목적으로 비치된다.
 
하지만 이 텍스트는 ‘그것’을 설명하려 노력하거나 논리적인 맥락을 구축하지 않는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작품과 공간에 대한 설명이 모호해진 풍경을 만들어낸 것은, ‘그것’와 ‘그것’ 사이의 빈 공간을 보면서 말끔히 사라지지도, 그렇다고 온전하게 존재하지도 않는 ‘그것’라는 매체에 대한 기억, 감각, 순간들을 추상적으로나마 구현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이곳은 노출된 콘크리트 벽, 쌓인 폐자재, 가벽은 좁은 통로와 함께 마치 버려진 놀이공원처럼 분절되고, 연출된다.
 
사실 이곳에 있는 작품들은 스스로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빛이 사라져야 존재를 발하는 대상을 스쳐 지나갔던 순간, 모르는 이들의 기억과 목소리를 재현하는 신체와의 대면, 시처럼 보이는 글과 이미지의 모호한 관계, 주고받는다는 공평하면서도 반복되는 행위에서 발생하는 허무한 실패, 예술 행위를 통해 사회가 정의 내린 성과를 증명하고자 하는 씁쓸한 노력의 단면 등은 앞서 언급한 사이의 빈 공간에서 감각했던 것들과 매우 가까워 보였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것’의 여백에 관한 이야기를 덧씌워본다. 작품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명확한 메시지에 전혀 다른 맥락이 겹쳐진다면, 그 무대는 관객에게 어떻게 작동할까. 공감을 생성시키기보다 충돌하거나 생경하여 혼돈할 텐데, 그 혼돈은 곧 ‘그것’이라는 이름이 붙은 장소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생소함과 맞닿는다.
 
결국 아무도 없다, 는 선언은 여전히 반어법이거나 거짓말처럼 들리며 혹은 기획자의 감상 섞인 자의적 해석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여기는 여전히 무언가로 바글바글하지 않은가. 하지만 없다, 는 판단은 정말 없다는 실제의 상황일 수도 있고 찾지 못했기 때문에 내리는 판단일 수도 있다. 관객 중 누군가는 ‘그것’에 필수적인 것들이 없다고 비판하거나 작품과 ‘그것’의 주제와의 연결성을 찾지 못할(않을)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것’ 의 주제나 기획의 언어를 차치하고 온전히 작품에만 집중할 수도 있을 테다.
 
무엇이 좋은 ‘그것’이냐고 묻는 누군가의 질문을 통해 ‘그것’은 결국 완벽하게 사라지지 못하고 유령처럼 어딘가에 맴돌거나 불시에 호명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으로 ‘그것’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여기의 문을 열고 닫았을 때, 과연 무엇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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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풀 작가지원 프로그램 기획전 《빙고 BINGO
 
○ POOLAP 프로그램과 전시는 작가 김정헌선생님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전시명: 빙고 BINGO
○ 작가: 김현태, 박종찬, 엄지은, 차슬아
○ 기획: 김미정
○ 그래픽디자인: 강경탁(a-g-k.kr)
○ 공간디자인: 김형준
○ 기간: 2017년 11월 27일(월) ~ 12월 30일(토)
○ 오프닝: 2017년 11월 27일(월) 오후6시
○ 장소: 아트 스페이스 풀
○ 관람시간: 10:00 ~ 18:00(매주 월요일, 12월 24일(일) 휴관)
 
*본 전시의 오프닝 행사는 몰타맥주Cisk와 함께합니다.
 
 
 
 
끝나지 않을 게임 앞에서
김미정(아트 스페이스 풀 큐레이터)
 

기억 속 빙고는 꽤 재미있는 게임이었습니다. 공통의 주제를 정해서 거기에 맞는 단어나 숫자를 고심하여 25개의 칸을 채우고, 적힌 단어를 친구가 불러주기를 조마조마하게 기다렸습니다. 그 긴장감을 깨고 ‘빙고!’를 먼저 외치는 친구가 참 부러웠어요. 빙고를 외치는 친구는 승자이자 동시에 이 게임이 종료되었음을 선언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빙고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을 짜는 일은 그다지 쉽지 않았습니다. 그저 같이 게임을 하는 이들과 나의 공통점을 유추해보거나, 그들과 얼마나 많은 단어를 공유할 수 있을지 운에 맡길 뿐이었습니다.
 
□□
빙고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것은 올해 POOLAP 기획전의 제목이 《빙고 BINGO》이기 때문입니다. 이 전시는 2016년에 이은 두 번째 POOLAP 선정 작가들의 단체전입니다. POOLAP은 아트 스페이스 풀의 신진작가지원프로그램으로, 올해도 작년에 이어 네 명의 선정 작가들과 약 6개월 동안 작가, 큐레이터, 비평가들이 참여하는 세미나 및 워크샵을 진행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들은 선배, 동료 작가들의 작업에 대해 질문하기도 하고, 본인의 작업과정에서 마주한 고민 등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작년 POOLAP 기획전의 제목은 《공감오류: 기꺼운 만남》이었습니다. 이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6개월 동안 작가들의 작업을 지켜보면서 이해의 과정은 늘 오해가 반복된다는 것을 절감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또한 ‘신진작가’의 전시에 흔히 동반되는 성급한 판단을 지양하기 위해 만든 제목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도 이와 비슷한 지점을 마주하게 되면서 결국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늘 비슷한 고민들에 맞닥뜨려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POOLAP의 전시는 선정 작가들을 소개하는 중요한 자리이지만, POOLAP 프로그램은 전시가 목적인 것도, 전시로 끝을 내는 단기성 지원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이러한 고민은 POOLAP의 지난 과정을 돌아보게 만들었고, 동시에 신진작가지원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기획자는 작가들의 공통점이 적힌 단어판을 들고 있다가, 누군가 그 단어들을 불러주면 동그라미 쳐가며 속 시원히 ‘빙고!’를 외쳐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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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획자의 고민과 달리 작가들은 (전시를 위해) 빙고를 외치는데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다만 작가들은 자신의 빙고판에 적힌 단어들을 끊임없이 살펴보고, 추가하기도 하며, 이미 적힌 것을 수정하기도 합니다. 또한 서로의 판에 적힌 단어를 유추해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상대방의 판에 적힌 단어를 맞출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김현태, 박종찬, 엄지은, 차슬아 네 작가는 자신만의 단어가 적힌 판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하지만 네 작가가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의 작품에는 근본적으로 ‘무엇이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서로 사용하는 매체도,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도 조금씩 다르지만 네 작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면밀하게 관찰합니다. 이는 세대에 대한 질문, 중심과 중심이 아닌 곳에 대한 질문, 그리고 자신이 사용하는 매체에 관한 질문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내용과 대상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시각 안에서 시작된 작업이지만 그들이 마주한 문제는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니기에 한정적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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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는 부모님의 집에서 발견한 박사모의 달력을 콜라주 기법의 회화로 그려내는데, 이는 특정 인물과 그들에 얽힌 정치적인 사건을 비판하는 태도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부모 세대와 자신이 속한 세대의 다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시대에 존재하여 가치관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들을 찾아내는 데 있습니다. 또한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남아 있는 근대성과 1970-80년대의 영화 속의 모습을 병치해봅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시대적 차이를 피력하기보다 과거의 이미지에서 변하지 않는 우리의 어두운 현재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박종찬 또한 과거의 것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전북 군산 그리고 직장이 있는 서천 장항, 이 두 도시에서 지역의 현실을 외면한 채 개발만을 목적으로 자행되는 사업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지방을 폄하하고 서울(혹은 해외)만을 선망하는 이들의 대화를 책으로 만들어 기록합니다. 이 책에는 두 지역의 역사와 함께 그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방을 벗어나고 싶은 젊은이들의 대화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지역에서 지속되는 식민의 기억들, 그리고 여전히 심각한 ‘서울중심주의’에 대한 씁쓸한 기록입니다.
엄지은은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작가 자신에게 이르는 3세대의 ‘단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모습을 문득문득 발견하게 되는 순간들을 일상에서 마주한 사물, 사건과 연결시킵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과수원, 구름, 별자리 등은 3세대를 관통하는 상징적인 언어로 등장하며, 종교, 고집, 침묵을 이유로 단절한 개인적인 가족사는 개방과 폐쇄, 압력의 이미지로 치환되어 의미의 확장을 시도합니다. 또한 작가는 도시에서 발생한 사고들과 가족의 단절을 연결시키는데 이는 작가가 선택한 일상의 평범한 풍경을 통해 은유적으로 구현됩니다. 이러한 은유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대신 모호하고 추상적인 이미지를 반복 등장시켜 그 경험을 추측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차슬아는 조각가로서 어떻게 하면 조각이라는 비효율적 존재를 효율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해왔습니다. 이에 탄생한 개념이 ‘일체형 조각’인데, 혼자 작품을 이동할 수 있는 크기로 제작되며, 좌대, 자체 매뉴얼을 포함해 포장까지 용이한 작품의 형태를 의미하는 작가만의 용어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영상 상영이 가능한 일체형 조각의 형식 안에서 모래의 물성을 실험해봅니다. 가변적인 성격을 가진 대표적인 물질인 모래는 작가에 의해 단단해지기도, 분리되기도, 혹은 전혀 다른 형태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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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 네 작가의 작업과정은 자신의 관찰 범주 안에서 발견한 키워드들을 빼곡하게 적은 빙고 게임판처럼 보였습니다. 전시를 ‘빙고’라 이름 붙인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사실 빙고는 타인이 상대방의 판에 기재된 단어를 호명해야 성립하는 게임이며 공감을 전제로 합니다. 어쩌면 네 명이 자신의 판에 기재한 단어 중에는 영원히 호명되지 않는 것도 있을 것이고, 때문에 FULL BINGO를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기획자 역시 내년에도 같은 고민을 또 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서로의 작업에서 접점을 발견하여 빙고판을 채워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빙고는 게임의 이름일 뿐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거나 찬성할 때 나오는 감탄사이기도 합니다. 문득 POOLAP을 포함한 신진작가지원프로그램의 전시가 전략이 필요 없는 빙고처럼, 질문을 공유하고 서로의 판에 적힌 단어를 유추하거나 읽어줄 수 있는 게임의 장으로 기능하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전시라는 게임 안에서 네 작가는 자신의 키워드가 누군가에 의해 반드시 불리는 것 혹은 규칙을 통해 게임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대신 의문의 지점을 관찰/번역하여 자신만의 언어로 빙고판을 채워나가는데 집중합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작가, 기획자, 그리고 관객 사이에서 ‘빙고!’를 외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그것이 게임의 끝을 알리는 신호인지, 동조의 반응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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