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8. 10 금 - 08. 28 화
개막 2012. 08. 10 금 6PM 복합문화공간 꿀
문의
복합 문화공간 꿀 070-4127-6468
아트 스페이스 풀 02) 396-4805
《수퍼포지션-아트, 사랑, 돈, 거처에 대한 카운터 페스티벌》아홉번째 포지션 페이퍼 호상근
작업실과 가까웠던 집이 멀리 이사 가게 되면서 길 위에서 점차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지루하리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작업실과 집을 오가는 긴 여정은 내가 찾은 '최고 재미있는 세상구경'이었다. 다양한 교통수단과 길을 이동하며 이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런 풍경들을 놓칠세라 급하게 노트에 옮긴다.
뜨거운 여름날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덩치 큰 안경 쓴 아저씨의 그림자 아래 들어와 해를 피해 미소를 띠며 닌텐도DS를 하는 소녀. 가슴팍까지 올려 입은 오버싸이즈 정장 바지 속으로 모시 하와이안 프린트 셔츠를 입은 시원한 지하철 안의 밀짚모자를 쓴 할아버지. 인도 위에 마주앉은 위통 벗은 노숙자 아저씨와 비둘기. 시원한 가을 추석 연휴, 나른한 아저씨의 다리를 늘어 잡고 있는 자식들의 모습. 위용을 떨치는 마당 없는 집의 빌라식 정원. 은행을 줍는 나이 지긋하신 형님 누나들. 월동준비 하시는지 몇 겹을 껴입고 종이상자를 챙기는 거리의 시인들. 난과 사훈액자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전형적인 한국 사무실의 모습.
어떤 것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 눈에 익숙해 져서 주목하지 못할 것들을 다시 끄집어내 혼자 고민해 보기도 한다. 찻길 위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마네킹을 보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인 생김새를 인식하는 얼굴 모양을 확인하게 된다. 만보기를 가죽 벨트 위에 찬 덩치 큰 아저씨에게 '귀여움'이라는 단어를 써보기도 한다. 미술관 앞에서 단체사진 찍는 아이들의 포즈를 보면서 요즘 아이들의 유행을 감지하기도 한다. 이곳에 차를 대지 말라는 자리 주인이 만든 듯한 다양한 모양의 주차금지 조형물에 아름다움과 존경을 느끼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일상이지만 몇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자. 우리는 그 속에서 평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보게 된다. 내가 보는 대상들은 수많은 잣대가 교차하는 치열함 속에서 스스로만의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다. 관찰자는 이 세상이 잠깐 한눈팔면 (과격한 표현을 빌리자면) '졸라' 멋진 것 투성임을 깨닫게 된다. 최근의 나는 관찰자로서 혼자만 보기 아까운 풍경 하나하나를 꾸준히 기록해 나갔다. 일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그림으로 그려지고 사진에 담긴 모습들을 모아보니, 이건 하나의 새로운 세계였다. 자 내가 만든 세계로, 언제든지 컴투히어!!!
호상근
《수퍼포지션-아트, 사랑, 돈, 거처에 대한 카운터 페스티벌》아홉 번째 포지션페이퍼, 호상근, <내가 본 것, 네가 본 것: 호상근 재현소>, 포스터 이미지, 2012, 디자인 김희지 ⓒ 호상근; 김희지; 아트 스페이스 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