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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낙원에서의 지난 여름

 

정현(미술비평)

 

노무현 정권 시절, 그 누구보다 그를 지지했던 윤주경은 잠시나마 도래한 신세계의 달콤한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가 비극적으로 사라진 후, 윤주경은 다시 광장으로 향했다. 많은 시민이 그처럼 광장을 찾았다. 지난 여름 그는 내내 카메라를 들고 어딘가로 향하는 행렬을 쫓아 다녔다. 이번 전시은 2010년 한국의 현재를 확장된 삼면화(triptych) 개념을 응용한 영상 설치작업이다.  

 

윤주경은 본인이 살고 있는 장소와 그 곳의 사람을 사진으로 꾸준히 담아냈다. 그러나 작업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오히려 생경하게 보인다. 집의 3/4이 잘려나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기도 양주에서 발견한 어느 집 한 채(건물#1, 2006)이나 삼척의 남근 공원의 성기 조형물과 군악대의 연주장면을 편집해 만든 영상작업은 미래지향적인 IT 강국 한국의 오랜 역사의 층위를 대변하는 남근 중심적 토테미즘이 생존하여 일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의 단면이다. 광활한 모뉴멘트 벨리의 사진 작업은 풍경으로서의 자연이 아닌 미대륙 개척사의 현장으로 원주민과 침입자가 대립하던 전투지로서의 대지다. 그곳은 기념비적인 공원이 되었고, 피의 역사는 승리라는 영웅적인 이미지로 대체되었다. 윤주경은 벨리 한 가운데 붉은 깃발을 들고 서있다. 붉은 색은 많은 함의를 담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고들 하나, 여전히 이념은 우리의 일상과 가치관을 조절하는 비가시적인 권력의 효과로 남아있다. 이번 개인전에서 윤주경은 예찬(celebrations)을 표하는 두 가지 극단적인 행태를 영상으로 담는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낡은 낙원 #1 (8-90년대)

윤주경은 80년대 중반부터 사진을 찍었다. 아직 한 번도 선보인 적 없는 초기사진은 극적인 앵글로 당시 서울 종로거리의 풍경을 스케치했다. 처음부터 그의 관심은 역사라는 시간 속에 스며들어 있는 사건의 현장이었으며, 사건의 주체 인간이었다. 그가 포착했던 1985년도의 종로는 시차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모던하게 보였다. 성조기 프린트가 있는 셔츠를 입은 한 남자의 뒷모습이나 보안검색에 걸려 가방을 들추는 모습, 서있는 여자를 바라보기 위해 심하게 고개를 돌린 남자의 역동적 모습이 한 프레임에 담긴 사진은 제프 월의 연출사진이 연상될 정도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시의 종로의 현실이다. 윤주경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권력과 민주주의를 꿈꾸는 저항의 힘이 충돌하는 장소였다. 80년대 말, 미국유학을 간 그가 시선을 던진 대상은 샌프란시스코 번화가 중심부의 텐터로인(Tenderloin)의 떠돌이, 노숙자, 마약중독자, 트랜스젠더나 창녀와 같은 타자들이었다. 이 무국적자 부류의 묵시록적 신체 이미지와 감시의 대상이었던 종로의 청년들은 저항과 순응 사이에서 무기력하게 보이는 불안한 신체처럼 보인다. 이후 캘리포니아로 학교를 옮긴 후 본격적으로 자기 자신을 대상화 시키면서 윤주경의 세계관이 작업으로 밀도 있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그는 대지, 국가, 문화, 개인, 정체성 사이의 제국화된 권력의 밀접한 관계를 일련의 자화상 시리즈로 등장한다.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대지는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장소, 또는 냉전시대의 제국주의적 환상을 기념비화 한 조각공원 같은 곳이다. 마치 지나간 전쟁을 증언이라도 하듯 붉은 깃발을 든 그가 그 안에 서있다. 당시 윤주경은 미국 역사 속에 기록된 한국의 흔적, 즉 외상을 쫓는다. 한국전쟁공원 안에 서있는 동상들 사이에 붉은 깃발을 들고 서있는 작가의 행위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각색된 ‘외상’에 끼어든 유일한 실재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낡은 낙원 #2 (2000-2007)

쌈지 레지던시 참여를 계기로 다시 한국에 돌아온 윤주경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작업에 매진했다. 그는 젠더 이슈를 액티비즘과 구분했다. 대신 남성적 신체, 그래서 모호한 몸으로 역도를 한다거나 지프차를 타고 서울의 산악 등지에서 가상 전쟁놀이를 즐기곤 한다. 윤주경이 제시하는 남근의 이미지, 군인, 유니폼, 지프차 등은 정치적 올바름을 표상하는 기호들이 아니다. 그에게 작업은 일종의 고백이다. 사회문화적으로 모호한 자신의 상태, 남성적인 것들에 매료된 자신과 건강한 민주주의를 기원하는 시민의 모습이 충돌하는, 그래서 이중적일 수밖에 없는 그의 이미지는 문명화된 야만성과 낙원에 대한 낭만이 공존한다. 이런 이중적 태도는 자신의 게이 정체성을 이데올로기의 질문으로 동일시한다. 2004년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 개인전의 “자유로 정션”(2004)에서 그는 임진각과 서울방향으로 나뉘는 교차로 중간 안전지대 위에서 붉은 깃발을 들고 서있다. 남과 북, 남성과 여성, 민주주의와 독재의 안전지대, 매우 좁고 명칭과 달리 매우 위험한 그 장소는 그 자신의 신체이기도 하다. 2007년의 개인전에서 과거와 현재, 미국과 한국의 땅을 섞고 영상작업과 사진작업이 균등하게 분배되면서 윤주경의 작업은 사진매체에서 영상, 소리매체로 이행하는 과도기였다. 윤주경은 전쟁의 역사를 기념하는 미국문화 속에 퍼져있는 제국주의적 이상향의 지표인 군인-영웅의 동상사진을 찍는다. 이후2007년 개인전<붉은 깃발을 들다>에서 동상의 공허한 얼굴들은 삼척의 해신당 남근 공원의 조악한 방뇨 조각상과 함께 사진 설치작업으로 등장한다. 남근중심주의와 한국참전기념공원의 군인동상은 주술적 인간상과 사냥을 나간 원시시대의 남성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과도한 남성성을 드러내고 몸의 정치화를 체현하며 젠더화 된 이념의 중앙에 서있던 그는 남근이 연상되는 포즈로 서있는 여성 누드 사진을 전시장 초입에 놓으면서 과장된 남성적 모습에서 한 켠 물러난다. 대신 실재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사건의 목격자로서 초현실적인 현실의 모습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지난 여름(2008-현재)

군인이 거수경례를 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경례”(2010)는 권력자에게 경애와 복종을 표하는 행위인 경례 장면이 반복적으로 편집된 영상이다. 퍼레이드에 참여한 군인들의 거수경례는 마치 벨라스케즈의 “시녀들”처럼 주제의 부재를 통해 권력이 드러나는 변위(parallax)의 작업이다. 허공을 향해 부동자세로 경례를 하는 모습 반대편에는 불교시국법회를 계기로 거리로 나온 촛불축제를 영상으로 담은 장면이 위치한다. 등불축제를 위해 제작된 불상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붉은 부처” (2010) 역시 알 수 없는(도래할) 무엇을 기다림을 위한 행렬이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키치적인 붓다조형물이 을지로를 지나는 장면은 마치 절대 오지 않는 절대자 “고도(Godot)”때문에 우왕좌왕하는 두 어릿광대가 연상된다. 내가 너의 웃음을 지켜준다는 광고 카피 같은 이번 전시의 주제는 도래할 유토피아에 대한 두 가지 행동양식을 행렬이란 형태로 보여준다. 그리고 한 가운데, 인적 없는 산의 오솔길을 걸어가는 화면이 있다. 2009년 사북 탄광촌에서 한 달간 오르내린 탄석 찌꺼기가30년 넘게 쌓여 만들어진 자연화 된 인공산에서 찍은 영상작업 “검은 산”(2009-2010)이다. 윤주경에게 대지는 헐벗은 호모사케르의 버려진 땅이 아니다. 그가 2008년 이후 기록하기 시작한 서울은 정치적 삶, 한나 아렌트가 얘기한 행위(action, praxis)와 말(speech, lexis)이 통제되는, 혹은 봉쇄된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대로와 광장은 권력자를 기리며 초점 없는 예찬을 하고 저항의 행렬도 목표를 잃은 듯 공허하게 이동한다. 윤주경의 작업은2008년 이후, 삶의 현장으로 다가간다.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어떤 현상을 쫓아가지만 과거 강렬한 이미지로 호소하던 것과 달라진 것은 없다. 과거엔 사건의 흔적에서 본인이 유일한 참여자였다면, 지금은 현실의 참여자로서 카메라 뒤에서 실재의 환영, 혹은 실재의 외상을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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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 아트 스페이스 풀, 서울